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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컨트롤 타워는?
 작성자 : iaeaq
Date : 2018-01-20 20:07  |  Hit : 16  

재난 컨트롤 타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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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광장은 수많은 상기된 얼굴들로 강남풀싸롱가득했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5년째 숨어 다니던 수배자였다. 나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고 있었다. 구로동맹파업 때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 지붕을 타고역삼야구장 피신했고, 86년 기무사가 서울노동운동연합 조직원들을 덮쳤을 때는 철조망을 넘어 올림픽대로로 도망쳤다. 나는 가까스로 검거를강남풀싸롱 피했지만 잡혀간 동료들은 심상정의 은신처를 대라고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쫓기는 수배 생활보다 고문을 겪은 동료들 때문에 견딜 수 없던 시절이었다.그런데 이런 날이 왔다. 수십만명이 꽉 메운 거리는 나 같은 수배자들에게 역삼야구장‘해방구’였다. ‘종철이를 살려내라’고 울며 구호를 외쳤다. 물고문, 전기고문 받은 동료·후배 민주주의자들을 향한 찢어질 듯한 심정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루 종일강남풀싸롱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때 나는 스물여덟이었다.87년 6월은 청년들의 죽음으로 열린 해방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직선제 쟁취’만으로 다소 협소하게 수렴됐지만,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노동 현장을 살려내는 한줄기 빛으로 이어졌다. 장시간강남풀싸롱 저임금 노동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게 숙명이라 생각했던 청년 노동자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공장 담벼락은 이 구호로 도배가 되었다. 울산의역삼풀싸롱 노동자들은 중장비를 끌고 시청 앞으로 나아갔다. 87년 7월, 8월, 9월 노동자 대투쟁이 열린 것이다. 그 과정에 또 젊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거제에서 조선소 노동자 강남야구장이석규가 최루탄을 가슴에 맞고 숨졌다. 스물둘 청년이었다. 그런 죽음 앞에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맞섰다. 여전히 수배 중이었지만, 나는 그 현장을 부지런히 뒤집고 다녔다. 그때 만났던 부산의 노동인권변호사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노동조합만 만들면 오물 세례를 받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고문을 당하던 역삼야구장시절을 딛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 시기 전국에 3000여개의 노조가 만들어졌다. 이후 급성장한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바탕으로 90년대 초중반까지 노동소득은 계속 늘었다. 그 시기가 한국 경제가 가장 풍요로웠으며 평등을 향한 열망이 가장 뜨겁게강남야구장 터져나오던 시기였다.그렇게 87년은 대통령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변화에 대한 희망을 만들었다. 그날로부터 30여년이 지났다. 불의와 불평등에 시달리던 한국의 청년들과 시민들은 이제 대통령도강남풀싸롱 바꾸었다. “평등한 세상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님의 말씀처럼, 촛불로 대통령도 바꾼 청년, 노동자들이 이제 자신의 삶을 바꾸는 평등한 세상을 향해 역삼풀싸롱나아가리라 믿는다.